슬픈데 왜 눈물이 안 날까요?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들의 방어기제

▲ 출처: 유튜브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 <플레이리스트109> 캡처

얼마 전 방송에서 가수 테이가 가까운 매니저를 떠나보낸 뒤 3년 동안이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고 고백한 장면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슬픈 일을 겪었음에도 정작 눈물이 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하게 일상을 이어갔다는 그 말에, 어쩌면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깊은 공감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왜 사람들은 그 마음에 몰입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거대한 상실이나 감당하기 버거운 충격 앞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우리 역시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평온한 척 버텨본 아픈 기억이 저마다의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중한 관계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하다가 일방적으로 감정을 착취당하고 깊은 배신감을 느낀 순간에도 우리는 비슷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곤 합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야 마땅한데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굳어버리는 현상 말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마주하는 진짜 마음은, 그렇게 억지로 버틴 시간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감정의 마비가 결코 강인함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쳐둔 마지막 비상벨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이 글을 읽기 전, 마음에 새길 3가지

01. 마음의 신호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은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과부하를 견디다 못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입니다.

02. 시선의 전환

감정이 마비된 상태를 자책하기보다, 나를 보호하려던 무의식의 눈물겨운 노역을 따뜻하게 알아봐 주세요.

03. 오늘의 쉼

차가워진 마음의 온도를 억지로 높이려 애쓰지 말고, 그저 웅크린 채 숨을 고를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

모든 것을 쏟아부은 관계 끝에 찾아온 마음의 동상

오랜 시간 진심을 다해 관계를 가꾸어 왔지만, 돌아온 것이 일방적인 무관심이나 차가운 배신일 때 우리는 거대한 심리적 충격을 맞이합니다.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질 법도 한데, 정작 내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고요함이 찾아오곤 합니다. 슬퍼할 여유조차 주지 않을 만큼 충격이 너무 컸거나, 이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면 내 존재 자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공포가 감정을 집어삼키기 때문입니다.

실제 상담 현장을 마주하다 보면, 배신감과 회의감 속에서 감정이 마비된 내담자분들이 종종 "제가 너무 냉혈안이 된 것 같아요, 아무 느낌이 없어요"라며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차가워진 것이 아니라 영하의 추위 속에서 동상을 입어 통각을 잃어버린 피부처럼, 마음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감각의 신경을 차단한 상태에 가깝습니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평온함은 튼튼한 방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은 얼음성인 셈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심지어 사고 과정이나 기억의 일부까지도 의도적으로 마비시키는 방법을 찾아낸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토 컨버그가 말하는 정서적 분열과 감정 차단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는 인간이 감당하기 버거운 극단적인 충격이나 관계의 파국을 마주할 때 '정서적 분열(Splitting)'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방어기제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을 '완전한 적' 혹은 '완전한 무감각'이라는 극단적인 양극단으로 쪼개어 버립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과 내가 쏟아부었던 애정이 동시에 존재할 때 발생하는 그 혼란을 견디지 못해, 아예 마음의 회로 스위치를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즉, 감정적 마비증후군이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칠 때 침몰을 막기 위해 배의 모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화물칸에 숨어버리는 선장의 방어적 고립과 같습니다. 당장은 안전해 보이고 평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기가 되지 않는 그 방 안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공기는 점점 탁해지고 영혼의 온기는 식어버리게 됩니다. 슬픔을 회피하며 쌓아둔 감정의 빚은 결국 일상의 모든 즐거움과온도까지 함께 빼앗아 가는 잔인한 대가로 돌아오게 됩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방어벽을 녹이는 다정한 해동의 시간

"차가워진 마음을 억지로 녹이려 뜨거운 물을 끼얹지 말고, 은은한 온기로 스며드는 허용의 시간을 선물하세요."

마비된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아직도 눈물이 나지 않지?"라며 스스로를 재촉하는 다그침을 멈추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나를 지키기 위해 단단하게 얼어붙은 방어벽은 강한 충격이나 억지로 열어젖힌다고 해서 해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차가워진 감정의 방안에서 혼자 떨고 있었을 여린 마음을 향해, 이제는 안전하다고 속삭여주는 다정한 허용이 필요합니다. "그렇게까지 감정을 닫아걸어야만 버틸 수 있었구나"라며 스스로의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순간, 마비되었던 심장박동은 서서히 제 속도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일기장에 삐뚤빼뚤 속마음을 적어 내려가거나, 작은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굳어 있던 감각의 결을 하나씩 쓸어내려 보세요. 눈물이 터져 나온다면 터지는 대로, 화가 난다면 그 분노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일상의 온기를 되찾고 비로소 온전한 나로 살아 돌아오는 가장 용기 있는 첫걸음입니다.

눈물을 잃어버린 채 무감각하게 버텨온 당신에게, 오늘 밤만큼은 스스로를 향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애썼다, 이제는 조금 마음을 놓고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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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상담사 (마음연구소 ant-mindlab)

  •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2급
  •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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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일상적인 자기점검을 위한 콘텐츠이며 의학적 진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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